▣.무구(無咎)의 불교 기본교리 요약
I. 종교와 불교
(1)종교는 인간을 정화하고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며, 현실의 고통을 해소하고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
- 마르크스: 종교는 인민의 아편
(종교가 그 사회에 바람직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갈등만 양산하는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부정적 입장에서 바라본 것)
(2)불교의 특징: 깨달음의 종교, 실천의 종교, 지혜의 종교, 자비의 종교, 평등의 종교, 평화의 종교.
① 깨달음의 종교: 불교는 스스로 깨달음, 즉 자각(自覺)의 종교다. 다른 신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각하여 부처가 되는 종교다. 즉, 타력문(他力門)이 아니라, 자력문(自力門)이다.
② 실천의 종교: 불교는 형이상학적, 현학적, 관념적 종교가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을 지향하는 실천과 행동의 종교다.
* 이에 걸맞는 유명한 고사(故事)가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백낙천이 도림선사를 찾아가 "불교의 대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스님은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이라고 하니,
백낙천은 웃으며 "그런 것은 어린 애도 다 아는게 아니냐"고 반문하니, 스님은 "비록 세살의 어린애도 다 알지만,
여든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③ 지혜의 종교: '지혜'란 우주의 진리, 존재의 실상을 여실히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 즉 존재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윤회와 고통의 근원으로 간주한다. 이는 12연기의 첫째인 '무명(無明)'이라 한다.
④ 자비의 종교: 자비(慈悲)의 원뜻은 발고여락(拔苦與樂)이다.
자(慈)는 여락 즉 상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비(悲)는 발고, 즉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
그러나, 불교의 자비는 모든 것을 용납하고 수용하는 '섭수(攝受)'와 악에 대해서 분노하고
굴복시키는 '절복(折伏)'과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뜻도 가지고 있다.
⑤ 평등의 종교: 타종교는 신과 주종(主從)의 관계이지만, 불교는 부처와 중생의 본질에 차이가 없다.
이는 중생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의 사성계급제도를 부정하고
이를 타파하려고 하셨다.
⑥ 평화의 종교: 인류 역사상 종교라는 미명(美名)하에 수없는 성전(聖戰)으로 무고한 생명이
끔찍한 죽음을 당해왔다. 이는 종교본질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결과에서 초래된 비극이다.
불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어 평화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3) 중생계의 실상(實相): 제로섬게임, 서바이블게임, 적자생존,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너의 행복은 나의 불행, 안수정등(岸樹井藤), 생사윤회(生死輪廻),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세계
* 안수정등(岸樹井藤): 한 사내가 코끼리에 쫓겨 우물을 발견하고 그 속으로 피한다.
다행히 칡넝쿨이 있어 거기에 매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우물안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쥐 두마리가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었다. 이런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에 처했으나,
칡넝쿨꽃에서 떨어지는 꿀맛에 취해 위급한 현실을 잊어버렸다. 이는 위급한 상황을
대처해야하는데 꿀이라는 욕망에 사로잡혀 더 큰 재앙을 불러온다고 해석이 된다.(무구)
(4) 불교의 이상(理想): 이고득락(離苦得樂), 전미개오(轉迷開悟), 혁범성성(革凡成聖),
안심입명(安心立命), 해탈(解脫), 열반(涅槃), 견성성불(見性成佛)
- 이고득락(離苦得樂):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으려는 것, 고통의 원인을 제거함
으로써 진정한 열반락(涅槃樂)을 얻는 것.
- 전미개오(轉迷開悟): 미혹하고 어리석음에서 해탈하여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
- 혁범성성(革凡成聖): 범부(중생)적인 것을 고쳐서 성인(부처)을 이루려는 것.
- 안심입명(安心立命): 마음속의 모든 번뇌.망상을 잠재우고 편안하게 하고 천명에 맡김.
- 해탈(解脫): 생사의 속박과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 열반(涅槃): 모든 욕망과 번뇌의 불꽃이 꺼진 고요한 적멸(寂滅)의 상태
- 견성성불(見性成佛): 자기안에 내재된 부처의 참성품을 직관(直觀)하여 부처가 되는 것.
2. 불교예절
(1) 경내예절(사찰예절, 도량예절)
절의 입구인 일주문 합장반배, 부도탑에서 반배, 순차적으로 금강문, 천왕문, 불이문, 해탈문을
지나면서 반배, 여러 문을 지나 절마당에서 중심건물인 대웅전을 향해 반배, 탑전에서 반배,
경내에서 스님이나 도반을 만나면 반배,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 중앙문인 어간문(御間門)을
피해 좌우측문으로 들어가 향, 초를 켜고 오체투지 삼배와 나올 때 반배하는 것이 예의이다.
(2) 스님과의 만남
스님은 속세를 떠나 부처님께 귀의한 승보(僧寶)로 인간적 지식이나 나이를 따질 수 없으며,
마땅히 삼보로서의 예를 갖추어야 한다. 출가(出家)한 것만으로 존경하고 예경하여야 한다.
이는 남을 존경 하면 스스로를 존경하는 이치와 같다.
스님을 경내나 길에서 만나면 합장반배의 예를 갖춘다. 기타 스님이 좌선시, 설법시, 세면시,
공양시, 목욕시, 해우소에서, 누워계실 때는 절하지 않는다.
스님방에 들어갈 때는 법당에 들어 가는 것과 같이 행동하면 된다. 들어갈 때 반배, 들어가서 삼배,
나올 때 반배의 예를 올린다.
(3) 법우와의 만남
불교안의 인연은 친구이상의 의미가 있어 서로 법우(法友)라고 부른다.
선우(善友), 도반(道伴)이라고도 한다. 법우란 부처님의 바른 법을 함께 배우고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서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고 서로의 수행을 도와주는 진리의 친구를 뜻한다. 그래서 법우라는 의미를 새기며
법명(法名)이나 '법우님'이라고 부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경내에서 만나면 서로 합장 인사를 한다.
* 합장(合掌): 두손바닥을 마주 합하는 자세로, 이는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며,
또한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공경의 표시이다. 한편 오른손은 불계(佛界), 왼손은 중생계(衆生界)를 상징한다.
그래서 합장의 의미에는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있다.
* 차수(叉手): 두 손을 자연스레 아래 위로 교차하여 포갠 손모양, 경내에서 걸어다닐때 취하는 자세,
하지만, 현재 선방(禪房)에서 경행시의 차수만 보게 되는 실정이다.
3. 법당예절
(1) 법당내 예절
법당에 들어갈때는 중앙의 어간문(御間門)을 피해 양측면의 작은 문을 이용하고,
법당에 들어서기전 자신의 신발이나 남의 신발을 가지런히 정돈해 놓는다.
법당에 들어설 때 부처님을 향해 합장반배하고 상단으로 합장한 채 다가가 반배후 향이나 초에 불을 켜고
적당한 자리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 삼배의 예를 올린다. 그리고 나올때는 반드시 촛불를 끄고 나온다.
법회시에는 방해가 되므로 공양으로 가지고 온 초와 향을 올리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는다.
법회 후 공양물은 올리면 된다.
(2) 향꽂는 법
향에 불을 붙여 불어 끄면 안되고 흔들어 끄거나 손으로 잡고 끈다. 오른손으로 향의 가운데를 잡고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받쳐 잡는다. 향을 든 손은 이마 높이 이상 한번 들어 올려 경건한 마음으로
향로에 향을 꽂는다. 그리고 합장 자세로 뒤로 물러나 삼배의 예를 올린다.
(3) 절하는 법
절은 기본적으로 '굴복무명 공경진성(屈伏無明 恭敬眞性), 즉 '무명을 굴복시키고 참성품을
공경한다'는 의미가 있다.
*.오체투지(五體投地): 양 팔꿈치, 양 무릎, 이마 다섯부분이 바닥에 닿게 하여 절을 하는 것으로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가장 경건한 예법.
오체투지(五體投地)는 자신의 아만심과 교만을 물리쳐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과 삼보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최고의 공경법이다.
* 오체투지(五體投地)에 내포된 의미: 찬탄삼보(讚歎三寶), 참회업장(懺悔業障), 권청(勸請),
수희(隨喜), 회향(廻向)
* 고두배(叩頭拜) => 또는 고두례(叩頭禮), 유원반배(唯願半拜)라고 함.
마지막 절을 할 때는 고두배를 하게 되는데, '고두배'란 삼배에 대한 아쉬움의 표시이며,
지극한 존경심에 대한 여운적 표현이다. 일명 '유원반배'라고도 한다.
고두배는 절 마지막에 이마를 바닥에서 떼고 난 후에 잠시 합장하고 바로 이마를 땅에 대고
양손을 올리며 절을 한다.
* 반배(半拜): 삼보께 예경을 올리는 절은 오체투지가 원칙이지만, 다음과 같이
큰 절을 할수 없는 경우에 '반배'를 한다. 또는 반배를 다른 말로 '저두(低頭)'라고 한다.
* 반배를 하는 경우: 절의 입구인 일주문, 부도탑, 금강문, 천왕문, 불이문, 해탈문을 지날 때,
절마당에서 대웅전을 향해, 탑 앞에서, 경내에서 스님이나 도반을 만날 때,
대웅전내나 어간문(御間門)을 지날 때, 대웅전 등 전각에서 향.초 등 공양물을 올린 후,
법당 들어가고 나올 때. 야외법회시, 옥내외 법회시 대중이 너무 운집하여 오체투지를 할 수 없을 때.
4. 법회예절
- 재(齋) 또는 법회: 불교의 모든 의식(예불, 헌공, 법회, 천도재, 예수재, 수륙재)을 통칭하는 말.
- 법회 순서: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 오체투지, 입정, 법문, 사홍서원, 회향이 일반적이다.
- 장궤 합장: 포살(布薩)과 자자(自恣)시 또는 수계의식 때나 발원문 낭독시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정강이를 똑바로 세우고, 손은 합장의 자세를 취하는 것
- 호궤 합장: 포살(布薩)과 자자(自恣)시 또는 수계의식 때나 발원문 낭독시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정강이를 똑바로 세우지 않고, 꿇어 앉은 자세.
- 우슬착지((右膝着地):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왼쪽 무릎을 세운 채로 예를 올리거나,
그와 같은 자세로 앉는 것을 우슬착지(右膝着地)라 한다.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대기 때문에
'우슬착지'라 하지만, 피로할 때에는 왼쪽 무릎과 교대하여 자세를 취할 수 있다.
5. 예경(禮敬)
(1) 불상(佛像)에 대한 예경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한동안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이 예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 없는 지역에서는 예배의 대상을 없어,
기원전후 인도의 간다라지방과 마투라지방에서 처음불상이 제작되었고,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모습을 32상 80종호로 형상화한 것이 불상(佛像)이다.
우리가 불상에 절하고 예배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불상이 표상하는 부처님의 위대한
복덕과 지혜를 존경함과 동시에 우리안의 부처가 될 자성불(自性佛)에도 예경하는 것이니
부처님과 부처가 될 모든 중생에게 예경하는 것이다.
(2) 경전(經典)에 대한 예경
경전은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이며, 이 경전을 통해 진리의 가르침을 배우므로 법보(法寶)로
존중되며 따라서 경전은 부처님처럼 예경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전을 접할 때 기은 신심을 내고
감사의 환희심으로 대해야 한다. 그래서 경전을 대할 때 의복을 바로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며,
경전위에 먼지가 있으면 깨끗한 수건이나 종이로 닦아낸다. 경전위에 안경 등 물건을 올려 놓으면 안된다.
▣.무구(無咎)의 불교 기본교리 요약
I. 종교와 불교
(1)종교는 인간을 정화하고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며, 현실의 고통을 해소하고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
- 마르크스: 종교는 인민의 아편
(종교가 그 사회에 바람직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갈등만 양산하는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부정적 입장에서 바라본 것)
(2)불교의 특징: 깨달음의 종교, 실천의 종교, 지혜의 종교, 자비의 종교, 평등의 종교, 평화의 종교.
① 깨달음의 종교: 불교는 스스로 깨달음, 즉 자각(自覺)의 종교다. 다른 신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각하여 부처가 되는 종교다. 즉, 타력문(他力門)이 아니라, 자력문(自力門)이다.
② 실천의 종교: 불교는 형이상학적, 현학적, 관념적 종교가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을 지향하는 실천과 행동의 종교다.
* 이에 걸맞는 유명한 고사(故事)가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백낙천이 도림선사를 찾아가 "불교의 대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스님은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이라고 하니,
백낙천은 웃으며 "그런 것은 어린 애도 다 아는게 아니냐"고 반문하니, 스님은 "비록 세살의 어린애도 다 알지만,
여든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③ 지혜의 종교: '지혜'란 우주의 진리, 존재의 실상을 여실히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 즉 존재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윤회와 고통의 근원으로 간주한다. 이는 12연기의 첫째인 '무명(無明)'이라 한다.
④ 자비의 종교: 자비(慈悲)의 원뜻은 발고여락(拔苦與樂)이다.
자(慈)는 여락 즉 상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비(悲)는 발고, 즉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
그러나, 불교의 자비는 모든 것을 용납하고 수용하는 '섭수(攝受)'와 악에 대해서 분노하고
굴복시키는 '절복(折伏)'과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뜻도 가지고 있다.
⑤ 평등의 종교: 타종교는 신과 주종(主從)의 관계이지만, 불교는 부처와 중생의 본질에 차이가 없다.
이는 중생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의 사성계급제도를 부정하고
이를 타파하려고 하셨다.
⑥ 평화의 종교: 인류 역사상 종교라는 미명(美名)하에 수없는 성전(聖戰)으로 무고한 생명이
끔찍한 죽음을 당해왔다. 이는 종교본질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결과에서 초래된 비극이다.
불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어 평화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3) 중생계의 실상(實相): 제로섬게임, 서바이블게임, 적자생존,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너의 행복은 나의 불행, 안수정등(岸樹井藤), 생사윤회(生死輪廻),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세계
* 안수정등(岸樹井藤): 한 사내가 코끼리에 쫓겨 우물을 발견하고 그 속으로 피한다.
다행히 칡넝쿨이 있어 거기에 매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우물안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쥐 두마리가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었다. 이런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에 처했으나,
칡넝쿨꽃에서 떨어지는 꿀맛에 취해 위급한 현실을 잊어버렸다. 이는 위급한 상황을
대처해야하는데 꿀이라는 욕망에 사로잡혀 더 큰 재앙을 불러온다고 해석이 된다.(무구)
(4) 불교의 이상(理想): 이고득락(離苦得樂), 전미개오(轉迷開悟), 혁범성성(革凡成聖),
안심입명(安心立命), 해탈(解脫), 열반(涅槃), 견성성불(見性成佛)
- 이고득락(離苦得樂):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으려는 것, 고통의 원인을 제거함
으로써 진정한 열반락(涅槃樂)을 얻는 것.
- 전미개오(轉迷開悟): 미혹하고 어리석음에서 해탈하여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
- 혁범성성(革凡成聖): 범부(중생)적인 것을 고쳐서 성인(부처)을 이루려는 것.
- 안심입명(安心立命): 마음속의 모든 번뇌.망상을 잠재우고 편안하게 하고 천명에 맡김.
- 해탈(解脫): 생사의 속박과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 열반(涅槃): 모든 욕망과 번뇌의 불꽃이 꺼진 고요한 적멸(寂滅)의 상태
- 견성성불(見性成佛): 자기안에 내재된 부처의 참성품을 직관(直觀)하여 부처가 되는 것.
2. 불교예절
(1) 경내예절(사찰예절, 도량예절)
절의 입구인 일주문 합장반배, 부도탑에서 반배, 순차적으로 금강문, 천왕문, 불이문, 해탈문을
지나면서 반배, 여러 문을 지나 절마당에서 중심건물인 대웅전을 향해 반배, 탑전에서 반배,
경내에서 스님이나 도반을 만나면 반배,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 중앙문인 어간문(御間門)을
피해 좌우측문으로 들어가 향, 초를 켜고 오체투지 삼배와 나올 때 반배하는 것이 예의이다.
(2) 스님과의 만남
스님은 속세를 떠나 부처님께 귀의한 승보(僧寶)로 인간적 지식이나 나이를 따질 수 없으며,
마땅히 삼보로서의 예를 갖추어야 한다. 출가(出家)한 것만으로 존경하고 예경하여야 한다.
이는 남을 존경 하면 스스로를 존경하는 이치와 같다.
스님을 경내나 길에서 만나면 합장반배의 예를 갖춘다. 기타 스님이 좌선시, 설법시, 세면시,
공양시, 목욕시, 해우소에서, 누워계실 때는 절하지 않는다.
스님방에 들어갈 때는 법당에 들어 가는 것과 같이 행동하면 된다. 들어갈 때 반배, 들어가서 삼배,
나올 때 반배의 예를 올린다.
(3) 법우와의 만남
불교안의 인연은 친구이상의 의미가 있어 서로 법우(法友)라고 부른다.
선우(善友), 도반(道伴)이라고도 한다. 법우란 부처님의 바른 법을 함께 배우고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서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고 서로의 수행을 도와주는 진리의 친구를 뜻한다. 그래서 법우라는 의미를 새기며
법명(法名)이나 '법우님'이라고 부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경내에서 만나면 서로 합장 인사를 한다.
* 합장(合掌): 두손바닥을 마주 합하는 자세로, 이는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며,
또한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공경의 표시이다. 한편 오른손은 불계(佛界), 왼손은 중생계(衆生界)를 상징한다.
그래서 합장의 의미에는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있다.
* 차수(叉手): 두 손을 자연스레 아래 위로 교차하여 포갠 손모양, 경내에서 걸어다닐때 취하는 자세,
하지만, 현재 선방(禪房)에서 경행시의 차수만 보게 되는 실정이다.
3. 법당예절
(1) 법당내 예절
법당에 들어갈때는 중앙의 어간문(御間門)을 피해 양측면의 작은 문을 이용하고,
법당에 들어서기전 자신의 신발이나 남의 신발을 가지런히 정돈해 놓는다.
법당에 들어설 때 부처님을 향해 합장반배하고 상단으로 합장한 채 다가가 반배후 향이나 초에 불을 켜고
적당한 자리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 삼배의 예를 올린다. 그리고 나올때는 반드시 촛불를 끄고 나온다.
법회시에는 방해가 되므로 공양으로 가지고 온 초와 향을 올리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는다.
법회 후 공양물은 올리면 된다.
(2) 향꽂는 법
향에 불을 붙여 불어 끄면 안되고 흔들어 끄거나 손으로 잡고 끈다. 오른손으로 향의 가운데를 잡고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받쳐 잡는다. 향을 든 손은 이마 높이 이상 한번 들어 올려 경건한 마음으로
향로에 향을 꽂는다. 그리고 합장 자세로 뒤로 물러나 삼배의 예를 올린다.
(3) 절하는 법
절은 기본적으로 '굴복무명 공경진성(屈伏無明 恭敬眞性), 즉 '무명을 굴복시키고 참성품을
공경한다'는 의미가 있다.
*.오체투지(五體投地): 양 팔꿈치, 양 무릎, 이마 다섯부분이 바닥에 닿게 하여 절을 하는 것으로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가장 경건한 예법.
오체투지(五體投地)는 자신의 아만심과 교만을 물리쳐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과 삼보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최고의 공경법이다.
* 오체투지(五體投地)에 내포된 의미: 찬탄삼보(讚歎三寶), 참회업장(懺悔業障), 권청(勸請),
수희(隨喜), 회향(廻向)
* 고두배(叩頭拜) => 또는 고두례(叩頭禮), 유원반배(唯願半拜)라고 함.
마지막 절을 할 때는 고두배를 하게 되는데, '고두배'란 삼배에 대한 아쉬움의 표시이며,
지극한 존경심에 대한 여운적 표현이다. 일명 '유원반배'라고도 한다.
고두배는 절 마지막에 이마를 바닥에서 떼고 난 후에 잠시 합장하고 바로 이마를 땅에 대고
양손을 올리며 절을 한다.
* 반배(半拜): 삼보께 예경을 올리는 절은 오체투지가 원칙이지만, 다음과 같이
큰 절을 할수 없는 경우에 '반배'를 한다. 또는 반배를 다른 말로 '저두(低頭)'라고 한다.
* 반배를 하는 경우: 절의 입구인 일주문, 부도탑, 금강문, 천왕문, 불이문, 해탈문을 지날 때,
절마당에서 대웅전을 향해, 탑 앞에서, 경내에서 스님이나 도반을 만날 때,
대웅전내나 어간문(御間門)을 지날 때, 대웅전 등 전각에서 향.초 등 공양물을 올린 후,
법당 들어가고 나올 때. 야외법회시, 옥내외 법회시 대중이 너무 운집하여 오체투지를 할 수 없을 때.
4. 법회예절
- 재(齋) 또는 법회: 불교의 모든 의식(예불, 헌공, 법회, 천도재, 예수재, 수륙재)을 통칭하는 말.
- 법회 순서: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 오체투지, 입정, 법문, 사홍서원, 회향이 일반적이다.
- 장궤 합장: 포살(布薩)과 자자(自恣)시 또는 수계의식 때나 발원문 낭독시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정강이를 똑바로 세우고, 손은 합장의 자세를 취하는 것
- 호궤 합장: 포살(布薩)과 자자(自恣)시 또는 수계의식 때나 발원문 낭독시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정강이를 똑바로 세우지 않고, 꿇어 앉은 자세.
- 우슬착지((右膝着地):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왼쪽 무릎을 세운 채로 예를 올리거나,
그와 같은 자세로 앉는 것을 우슬착지(右膝着地)라 한다.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대기 때문에
'우슬착지'라 하지만, 피로할 때에는 왼쪽 무릎과 교대하여 자세를 취할 수 있다.
5. 예경(禮敬)
(1) 불상(佛像)에 대한 예경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한동안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이 예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 없는 지역에서는 예배의 대상을 없어,
기원전후 인도의 간다라지방과 마투라지방에서 처음불상이 제작되었고,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모습을 32상 80종호로 형상화한 것이 불상(佛像)이다.
우리가 불상에 절하고 예배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불상이 표상하는 부처님의 위대한
복덕과 지혜를 존경함과 동시에 우리안의 부처가 될 자성불(自性佛)에도 예경하는 것이니
부처님과 부처가 될 모든 중생에게 예경하는 것이다.
(2) 경전(經典)에 대한 예경
경전은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이며, 이 경전을 통해 진리의 가르침을 배우므로 법보(法寶)로
존중되며 따라서 경전은 부처님처럼 예경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전을 접할 때 기은 신심을 내고
감사의 환희심으로 대해야 한다. 그래서 경전을 대할 때 의복을 바로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며,
경전위에 먼지가 있으면 깨끗한 수건이나 종이로 닦아낸다. 경전위에 안경 등 물건을 올려 놓으면 안된다.